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마사치오
    카테고리 없음 2023. 7. 20. 14:55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1401년 세례당 북쪽문의 청동부조 공모에서 기베르티에게 패하였던 브루넬레스키는 1418년 피렌체 대성당을 마무리하는 공모에 둥근 지붕의 설계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공사관계자들은 시공의 단계에서 기베르티와 함께 공사할 것을 권하였다. 브루넬레스키는 도나텔로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시공 설명회에 불참하였으며, 설명을 기베르티에게 떠넘겼다. 예상대로 기베르티는 이 설계의 시공 능력이 없음이 판명되었고, 브루넬레스키는 비로소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 기베르티를 따돌렸다. 우리가 오늘날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미화시키고 있는 당시 작가들의 현실적인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시작된 피렌체 대성당의 둥근 지붕은 르네상스 건축의 시작을 예고한다. 고딕 성당의 뾰족한 지붕은 고대로마 방식의 둥근 지붕으로 대체되었다. 고딕 성당이 하늘을 찌르듯 솟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브루넬리스키의 돔은 마치 피렌체의 지붕처럼 도시를 감싸 안고 있다. 돔의 공법 또한 벽돌을 2중으로 쌓아 지탱하게 하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1421년에 시자한 산 로렌초 교회는 외부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내부는 그가 지향한 고전적인 건축조형을 충분히 보여준다. 우리가 고딕 건축에서 본교회 내부는 아래부터 궁륭의 천장까지 벽기둥으로 이어져 긴장되고 압축된 공간이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산 로렌초 교회의 내부는 가는 원기둥을 아치로 연결하고 지붕을 평평하게 하는 바실리카 방식을 빌려 합리적이고 여유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가 고대건축을 참고하여 이룩한 르네상스 방식은 단순하고 경쾌하다. 인노첸티 병원의 회랑 방식을 무아삭 클로이스터의 로마네스크식 회랑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넓은 기둥 사이와 높이, 그리고 2층의 흰 벽에 자리 잡은 작은 창문의 비례를 보라. 아무 장식이 없는 듯 단순하지만 이것들이 서로 어울려 이루는 비례의 조화는 참으로 경쾌하다. 기둥과 기둥 사이, 기둥과 벽 사이, 그리고 바닥에서 주두 바로 아래까지의 길이를 일치시킴으로써 하나의 정입방향체를 만들고, 이를 공간에서 반복시켜 정돈감을 주었다. 그리고 큰 아치 위에 작은 창문을 두어 율동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 조형과 현실감 : 도나텔로의 조각

     

     브루넬레스키와 가까이 지내던 도나텔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목조로 완성하여 브루넬레스키에게 보였는데, 이를 본 브루넬레스키는 도나텔로에게 어떻게 십자가에 예수를 매달지 않고 농부를 매달았느냐고 대꾸했다고 한다. 정확한 사실의 기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작품에서 도나텔로가 보여주는 현실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도나텔로는 <성 지오르지오>상에서 고전조각의 조형미를 구현하였다. 그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콘트라포스토 자세와 당당한 양감, 팔등신의 비례 등 고전적인 이상을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감실 배경의 무늬를 없애고 상을 조금 작게 함으로써 조각상이 배경의 공간에서 여우 있게 놓이도록 했다. 또한 조각상 아래의 부조에서는 오른쪽 건물과 왼쪽의 동굴을 대각선으로 배치하고, 관람자에게 가까운 부분은 높은 부조로, 관람자로부터 먼 부분은 아주 낮은 부조 수법을 사용하여, 실제 대리석의 두께가 5cm 정도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공간감을 자아내는 스키아차토식을 창안해 냈다. 이러한 개발은 그가 브루넬레스키와 바사치오와 함께 교류하면서 일구어낸 원근법에 대한 관심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도나텔로는 로마에 오래 머물면서 이러한 고전적 이상으로부터 멀어졌다. 그의 나이 71세에 제작한 <막달라 마리아>는 <성 지오르지오>의 조형미와 정반대의 편에 와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추하며 흉측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빌려서 도나텔로는 막달라 마리아의 처절한 기도와 나아가 인간의 참회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를 농부와 같은 현실의 인물로이해하던 도나텔로에게 조화로운 고전적 아름다움은 오히려 공허한 가상같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요절한 천재 마사치오

     

     마사치오는 15세기 전반에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가 이룬 업적을 회화에서 구현한 화가이다. 브루넬레스키로부터 기하학적인 원근법의 원리를 터득하고, 도나텔로의 단단한 양감의 가치에 공감한 것이다. 

     

     1425년경 페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벽면에 제작한 벽화 <성 삼위일체>는 15세기 전반에 이룩한 원근법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십자가의 예수를 중심으로 하느님과 마리아와 요한, 그리고 주문자 부부를 삼각형으로 배치함으로써 삼위일체라는 주제와 화면 구도의 일치를 꾀하고 있다. 또한 2차원의 벽면에 3차원의 실제감을 나타내려 했던 그의 관심은 원근법뿐만 아니라 그리자유기법(회색 계통의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여 부조 같은 입체감을 주는 기법)과 연극적인 요소들까지 동원하고 있다. 즉 화면 아래의 석관은 마치 실제 대리석같이 보이는데, 이는 건축물과 조각 부분을 회색의 단색톤으로 처리함으로써 색채로 묘사된 안물과는 다른 건물의 실제감을 주는 그리자유 기법 덕분이다. 또한 예수의 오른쪽, 화면의 왼쪽에 있는 마리아에게는 우리를 쳐다보면서 손은 예수를 가리키게 하는 연극적인 제스처를 적용함으로써 우리를 화면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개자 역할을 부여하였다.

     

     마사치오는 20세 후반에 요절하였지만 르네상스 회화에서 빼놓지 못할 중요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가 마솔리노와 함께 작업하기 시작한 브랑카치 가족 예배실의 벽화는 아래 위 두 단으로 나누어 여러 장면으로 펼친 베드로 성인의 일생과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화는 마사치오와 마솔리노, 그리고 마사치오가 죽은 후 몇 년 지나서 재개된 필리피노 립피의 작업이 함께 있는데, 여기서는 마사치오의 그림만을 보기로 한다. 

     

     왼쪽 벽의 윗단에 그려진 장면은 <세금을 바치는 예수>이다. 이 주제는 성경이야기 중에서 거의 그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여기서는 아마도 당시 거론되던 교회의 세금납부 여부와 관련되어 택해진 것 같다. 이야기는 이렇다. 세리가 와서 예수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자 베드로가 거부하고 나섰다. 그러자 예수가 "(성전세를 바칠 의무가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이렇게 하여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낚인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보아라. 그 속에 한 스테라르짜리 은전이 들어 있을 터이니 그것을 꺼내서 내 몫과 네 몫으로 갖다 내어라"(마태복음 17:26-27)라고 명하고 베드로는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 

     

     마사치오는 물고기 입에서 은전을 꺼내 세리에게 주는 장면을 곁들이면서 중앙에 제자들로 둘러싸인 예수를 그리고 있다. 화면은 오른쪽에 대각선으로 놓인 건물로부터 산을 지나 점점 작아지는 나무로 이어져 후경으로 사라지는 공간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화면중앙엔 제자들이 우너통형을 이루며 예수를 둘러싸고 있다. 나는 이 구도를 볼 때마다 세잔의 <대 목욕도>가 생각난다. 많은 사람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는 화가의 선택인데 마사치오는 그것을 예수를 중심으로 한 원통형으로 본 것이다. 19세기 말 세잔도 원뿔의 구도를 이루기 위해 인물들을 안쪽으로 기울게 배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옷을 입은 인체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마사치오는 옷무늬는 물론 옷주름도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팔을 원통의 입체처럼 다루고 있다. 세잔 또한 사물을 원통과 구, 원뿔로 보았다. 이러한 공통점은 아마도 사물의 잔가지를 버리고 근본을 취하려는 지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 터이다. 

     

     그는 또한 성경의 주제를 인간의 깊은 감정으로 이해하였다. 벽화의 왼쪽 위에 그려진 마사치오의 <낙원 추방>과 벽화의 오른쪽 위에 마솔리노가 그린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먹는 <유혹>을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마솔리노는 단순히 누드로 서 있는 남녀를 그려 원죄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마사치오는 창피해하고 후회하는 아담과 이브를 통렬한 모습으로 전해주고 있다. 성경의 이야기가 생생한 인간의 감정을 지니면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