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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신화를 그린 보티첼리
    카테고리 없음 2023. 7. 20. 17:01

     르네상스가 고대의 재부흥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품은 여전히 기독교 주제를 다루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세속적인 목적의 주문이라 해도 사회조직 자체가 기독교라는 틀에 흡수되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주제를 빌려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신화를 다룬 아름다운 그림들은 대부분 보티첼리에 의해 그려졌다. 이 그림들도 물론 주문에 의한 제작이었지만 공공장소에 과시의 목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보다 개인 별장에 걸기 위한 소수 엘리트층의 수요에 의한 것이었다. 

     

     피렌체 근교의 메디치 별장에 걸려 있는 <봄>은 로렌초 디 메디치가 사촌 피에르 프란체스코 디 메디치의 결혼과 관계된 주문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오른쪽엔 제피르가 클로리 님프를 쫒아오고 있지만 그녀는 벌써 다산과 꽃의 여신인 플로라로 변해 있다. 제일 왼쪽엔 신들의 안내인인 머큐리가 그의 지팡이로 구름을 가리키고 있고, 그 옆의 세 여신에겐 큐피드가 사랑의 화살을 겨냥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사랑의 신 비너스가 마치 그들을 관장하듯 자리하고 있다.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지만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 그림을 마사치오 그림과 비교해보아도 흥미롭다. 보티첼리는 이미 원근법과 명암법을 마스터한 대가였지만 그는 이 그림에 그 방법을 전혀 쓰지 않았다. 배경의 검은 숲은 평평하고, 밝은 인물상들은 부유하듯 떠있다. 인물의 묘사에서도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실제감이 없으며 섬세한 선들과 작은 장식들, 바닥에 뿌려진 작은 꽃들은 그림을 아름다움 자체로만 느끼게 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아마도 서양미술사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맏는 작품일 것이다. 조개 속에서 태어난 비너스는 바람의 신이 보내주는 장미꽃의 미풍을 받으며 해안에 이르고, 님프는 망토를 준비하여 그녀에게 입히려 하고 있다. 바다의 흰 녹색과 하늘의 연한 푸른색, 그리고 비너스의 살색과 자줏빛 망토가 이루어내는 색조는 아름답기만 하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아름다움의 전형이라고 여겨지는 비너스의 인체는 아주 비현실적이다. 인체는 거의 구등신이며, 너무 긴 목과 늘어진 어깨, 그리고 창백한 살색과 표정은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보티첼리가 이러한 신화의 주제를 그릴 때 그가 이야기의 구성까지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이 주제의 아이디어는 그림의 주문자인 메디치 가와 그들이 후원하던 인문학자들에게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들 그룹에서는 플라토니즘의 기독교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신플라토니즘이 유행했는데,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마리아의 신화적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보티첼리가 보여주는 현실감이 없는 듯한 아름다움은 메디치 가를 중심으로 부흥하였던 엘리트층의 이상주의가 맞이하게 될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1492년 로렌초 디 메디치가 죽자 1494년엔 프랑스가 피렌체를 침공하고, 이듬해 메디치는 가는 추방된다. 메데치 가의 전횡과 사치를 비방하던 다소 광신적인 수도사인 사보나롤라는 사회개혁을 부르짖고, 비록 내부적인 문제는 많더라도 겉으로는 평온했던 피렌체는 혼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사보나롤라는 화형에 처해진다. 사보나롤라를 추종하였던 보티첼리는 직접적인 정치주제를 그림으로 다루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기 작품들에서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절망감을 느낄 수 있다.

     

     1501년에 그려진 <신비한 탄생>은 그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주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이를 위해 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르네상스 방식과는 너무나 달라서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일까 의아할 정도이다. 아래의 천사는 작고, 하늘의 천사는 커서 그림은 뒤로 무러서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쏙아질 것 같다. 인물들의 크기 또한 화면 중앙에 무릎 꿇은 마리아는 너무 커서 처마에 닿으며, 아기 예수와 요셉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모두 작다. 중요인물을 크게 그리는 중세의 방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그림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는다. 껴안고 있는 천사들은 슬픈 모습을 하고 있다. 

     

     천사들은 올리브나무 가지를 들고 있고, 목동과 동방박사들은 모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땅에 있는 천사들은 그들이 들고 있는 띠에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온정" (누가복음 2:14)을 외치며, 하늘의 천사들은 "하느님의 어머니, 하느님의 신부, 세상의 여왕" 마리아라고 강조한다. 이 그림은 분명 종전에 그려지던 단순한 아기 탄생이 아니다. 마치 종말을 알리는 요한계시록 같다. 그림의 맨 윗부분에 그리스어로 쓰인 알기 어려운 글은 이 그림이 그려진 1500년을 세상의 종말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피렌체의 많은 미술가들이 원근법과 명암법으로 사물을 그리고 있을 때 보테첼리는 선과 색채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그리고 15세기 말 혼란의 시대엔 영적인 세계를 표현하려는 듯 중세적인 방법으로 신비함을 그렸던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가장 큰 특정 중 하나는 과학적인 원근법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공간을 묘사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이 시대 미술가들이 연구한 선 원근법은 인간이 자신 앞에 펼쳐진 공간을 과학적으로 파악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여기 마사치오가 그린 <성 삼위일체>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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