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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으로서의 미술 : 레오나르도 다 빈치_1
    카테고리 없음 2023. 7. 24. 16:53

     미술사에서 작가 한 사람을 천재시한다든지 예술적인 업적만을 부각시키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한 작가가 아무리 뛰어났어도 작품은 사회의 여건과 요구에 의해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미술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업적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시대의 요구에 따르면서도 언제나 이것을 능가하는 이들의 작품이 없이는 르네상스를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미술을 통하여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탐구했으며 미켈란젤로는 종교적 구원을 갈망했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근처의 빈치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빈치에서 온 레오나르도'라는 뜻으로 성이 없는 셈이니 변호사와 농촌 여인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였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열네 살쯤에 베로키오의 제자로 들어가 화업을 시작했으며 3-4년 후인 1470년경의 베로키오의 작품 <예수의 세례>에 레오나르도의 붓질이 처음 보인다. 다른 화가들처럼 붓빨고 물감을 만드는 등 도제교육을 받으면서 조수로 일한 기간의 작업이다. <예수의 세례>는 물론 스승 베로키오의 작품이고 일부분만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으로 아마 여러분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림의 아래 왼쪽 천사 부분과 배경 부분이다. 스승 베로키오가 그린 예수 모습은 책채나 윤곽선 묘사가 분명한 데 비해 레오나르도가 그린 부분은 다소 어슴푸레하다. 천사의 머리카락이나 눈, 또는 옷 부분을 보면 짧은 선을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경계를 흐릿하게 하였다.

     

     이렇게 초기부터 나타난 그의 그림의 특징은 말년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또한 드로잉에도 드러난다. 펜으로 그린 스케치는 아르노 강가의 모습이다. 그의 바위 절벽, 잣나무들과 강을 묘사하면서 끊임없이 잔 터치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 사물은 우리 앞에 선명히 부각되지 않고 멀리 밀려나 있다. 사물과 보는 이 사이엔 공기가 있으며, 자연의 관찰자 레오나르도는 이 공기의 존재를 우리에게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스물여섯 살쯤인 1478년에 스승으로부터 독립하였고 그 후 주문을 받은 대표적인 작품이 <동방박사의 경배>이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지만 그의 관심을 읽을 수 있는 중요 작품이다. 레오나르도는 공간에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기 위해서 미리 정확한 원근법의 스케치를 하였다. 그리고 이를 확대하여 패널에 옮긴 후 그 위에 비례에 맞게 인물을 배치하였다. 인물들은 마리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빙 둘러 있는데, 특히 우리를 궁금하게 하는 것은 오른쪽 어두운 부분의 인물들이다. 수염 난 노인은 아기 예수를 자세히 보려는 듯 이마에 손을 뻗어 놀라움을 표시하며 제일 오른쪽의 아름다운 젊은이는 그윽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해골과 같은 상태의 노인이 그려져 있다. 아름답게 정형화되어 있는 마리아와 대조적으로 이 인물들은 젊은이, 늙은이 또는 놀라운 이, 침착하게 바라보는 이 등 다양하다. 레오나르도는 많은 글을 남겼는데, 인물의 제스처와 표정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드로잉을 보면 그는 실제 인물의 행동을 관찰한 후 글로 써서 이론화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바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었다. 그는 <동방박사의 경배>를 완성하지 못한 채 밀라노에 갔으며 거기서 거의 17년을 머물게 된다.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초청으로 밀라노에 가서 그가 주로 한 일은 엔지니어 역할이었다. 움직이는 다리를 설계하고, 대포나 전쟁 무기를 고안했으며, 건축 설계도 하였다. 또한 최초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다. 실제로 제작된 것은 많지 않지만 그는 물리적인 이치를 적용하여 도구를 만드는 데 끊임없는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있는 동안 제작한 그림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의 화업에서 빼놓지 못할 작품들이다. 그중 하나가 <동굴의 성모>이며 다른 하나는 <최후의 만찬>이다. <동굴의 성모>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 소장 두 점의 서로 다른 버전이 전해진다. 연구에 따르면 1483년 밀라노의 성프란체스코 교회가 주문하여 완성한 것은 루브르 소장의 작품이며, 이것을 후에 프랑스의 루이 12세에게 선물하면서 다시 그 자리를 위해 그린 것이 런던의 대영박물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왜 마리아와 예수가 동굴에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아쉽게도 아직 학자들 간에 일치된 해석은 없지만 그 중 두 가지는 설득력이 있다. 하나는 이 제단화가 있었던 예배실이 '원죄 없이 잉태한 마리아'에게 바쳐졌다는 사실과 연관 지어 보면 동굴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 태초의 곳이라는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레오나르도의 지질학에 대한 관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점이다. 동굴은 이끼가 가득 끼고 습해 보이지만 마리아의 주변엔 물과 바위, 수많은 작은 꽃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 그림은 건축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이 그림에서 그와 비슷한 구조를 느끼게 된다. 동굴은 마치 커다란 돔같이 이들을 감싸고 있으며, 아래 있는 네 인물들 또한 원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한가운데의 마리아는 오른손으로 아기 예수를 이끌면서 왼손으로는 세례 요한을 축복하는 자세이다. 오른쪽의 천사는 왼손으로 시례 요한을 받쳐주면서 아기 예수를 가리킨다. 천사와 요한은 메시아가 오심을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몸은 천사와 요한에게 향사고 있으면서 마리아에게 이끌려 있다. 그들의 제스처는 성경의 의미와 함께 화면구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천사는 관람자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화면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렇게 제스처를 구도와 의미에 적용하는 레오나르도의 방법은 <최후의 만찬>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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