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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회화의 황금기와 벨라스케스, <시녀들>카테고리 없음 2023. 7. 14. 17:20
흔히 17세기를 스페인 회화으 황금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놀라운 회화의 솜씨를 발휘한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있었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를 살펴보기 전에 당시 스페인 화단의 특징을 먼저 보자. 17세기 스페인에서는 종교적 신부주의가 만연해 있었으며, 제수이트 교단을 이끌었던 열정적인 성인 이그나티우스 역시 스페인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 리발타의 <십자가에 매달린 성 베드로를 보는 성 놀라스코의 환상>은 종교적인 체험을 주로 다루었던 17세기 스페인의 반종교개혁적인 회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가 하면 후안 산체스 코탄(1561~1627)은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함축적인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톨레도 출신으로 야채와 열매들을 인위적으로 배열하여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한 코탄의 정물화는 금욕적이면서도 건축적인 당당함을 지니고 있어 쉽사리 그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세비야 출신의 벨라스케스는 마드리드로 오기 전에 주로 성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장르화를 제작하고 있었다. <세비야의 물장수>는 있는 그대로의 하층민들에 대한 묘사와 강한 명암대조법의 사용 면에서 카라바지오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화면은 매우 압축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화면 앞으로 튀어나올 듯 투박한 물항아리는 해진 망토를 입은 남자의 실루엣과 함께 시선을 집중시킨다. 벨라스케스가 젊은 나이에 터득한 다양한 대상의 질감들을 묘사해내는 유화의 기술과 구성법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이 그림은 작품의 주제가 다소 모호하다. 세비야의 하층민들의 삶을 묘사한 통속적인 장르화라 하기에는 그 분위기가 자못 엄숙하며 배치도 함축적이다. 투박한 도기와 반질반질한 자기, 그리고 꺠질 듯 가벼운 유리의 질감의 강조된 정물화 같기도 하고, 연배가 다른 제 인물이 크게 포착되어 있어서 초상화 같기도 하다. 미술에 있어서 물을 담는 용기란 연륜을 쌓는 삶의 통상적인 은유이다. 벨라스케스는 인생의 단계와 삶에 대한 교훈을 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녀들>은 3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 뿐 아니라 흥미진진한 구성화 회화적인 솜씨로 인하여 이 화가의 화업을 결산하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림의 전면에는 황녀 마르가리타와 시녀, 애완견이 있고, 한 걸음 뒤에는 커다란 캔버스를 세우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의 캔버스는 크기로 보건대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이 작품에 해당할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이렇게 큰 캔버스에 무엇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화가의 시선이 닿는 캔버스 밖의 가상의 공간에 왕과 왕비가 서 있다는 것은 거울에 어슴푸레 비친 왕 부처의 초상으로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보이지 않는 캔버스에 무엇이 그려지고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왕과 왕비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스튜디오를 황녀 마르가리타와 시녀들이 애완견을 데리고 잠시 방문한, 에스코리알 궁전의 화실에서 일어난 왕실의 일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제목을 정확하게 하자면 <화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황녀 일행>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그의 주군과 왕비는 정작 거울에 비친 흐릿한 터치로만 존재할 뿐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캔버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화가 자신이라는 점이다. 실제 거울 속에 희미하게 그려진 펠리페 4세는 기울어가는 국운을 되살리려 나름대로 애썼으나 시종 무기력하였고, 다음 대에 개서는 함스부르크 혈통마저 끊기게 되는 불안한 왕이었다. 오히려 벨라스케스는 팔레트와 붓을 당당히 들고 선 화가의 모습으로, 동시에 가슴에 붉은 기사훈장이 선명한 귀족의 일원으로 그려졌다. 벨라스케스는 이제 장인이 아닌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성공한 자신의 시계를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시녀들>을 통해 미술가로서 자부심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입체적인 공간을 평면에 재현하는 회화 본연의 방법에 있어서도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였따. 뒤쪽으로 연결된 문과 계단, 그곳으로 스며든 빛을 통해 스튜디오 뒤편의 공간을 암시하는가 하면, 거울을 이용하여 화면 앞쪽 왕과 왕비가 서 있는 자리이자 관객들의 공간을 비추고 있다.
또한 어둠 속에서 빛에 의해 드러난 대상들은 조각적인 덩어리가 아닌 가볍게 붓질된 물감의 색조의 흔적들로 이루어졌다. 황녀 마르가리타의 빛나는 금발과 의상의 레이스를 표현한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벨라스케스는 단 몇 번의 붓질로도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개의 보드라운 털, 그리고 화려한 의상의 반짝임을 표현해 낼 수 있었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는 붓의 자유로운 흐름과 물감의 흔적을 통해 얻어지는 생생한 회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대상을 이미 알고 있는 형태의 관념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망막에 닿는 색채의 파편으로 인식하는 벨라스케스의 이 같은 표현 방식은 인상주의 시기에나 소화될 만한 선구적인 것이었다. 벨라스케스는 말년의 대작 <시녀들>을 통해 빛과 형태, 공간의 회화적인 재현이라는 시각예술의 고유한 문제들에 도전하였다. 17세기 이후 회화는 르네상스의 기하학적 원근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광학적인 빛의 반사와 시각의 주고받음을 통해 그럴듯하게 세계를 재현하는 방법을 터득해나갔다. 벨라스케스를 필두로 이후 미술의 역사는 보다 다채로운 회화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16세기 말 로마에서 시작된 카라바지오의 회화는 인접한 가톨릭 지역이었던 스페인의 종교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벨라스케스는 그러한 카라바지오식의 명암대조법을 한층 세련된 회화적인 기술로 발전시켰다. 또한 카라바지오는 당시 로마의 카라치와 같은 아카데미 화가들과 달리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었으며, 벨라스케스 역시 이러한 리얼리즘을 중시하였다. 17세기 초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두 걸출한 화가를 통해 이전에는 그려지지 않던 절대적인 종교와 권력 이면의 평범한 하층민들의 삶과 모습들이 포착되었다. 이들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현실을 바라보는 리얼리즘의 전통은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줄기를 이뤄 19세기에 더욱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