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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 미술의 특징_1
    카테고리 없음 2023. 7. 14. 22:49

     기원전 146년 로마가 그리스가의 코린트 지역을 점령한 이후 지중해 지역은 사실상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 시의 티베리나 섬에서 시작한 로마 민족은 이제 제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원래 호전적이었던 로마 민족은 그리스의 발달된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변형시켰다. 비너스와 마르스의 상에 얼굴만 바꾸어 부부의 초상을 만들었는가 하면, 그리스 신전 형식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인이 중요시하던 조화로운 비례는 무시하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고대 전공의 초기 미술사학자들은 로마가 그리스 미술을 망쳐놓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화 현상은 한 가지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기보다 각 사회의 요구에 의한 생산임을 자각한 이후의 학자들은 로마 미술이 지닌 실용성과 현실성, 그리고 이야기 서술을 중요시한 특성들을 부각시켰다.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판테온 신전의 정면은 기단부 위에 열주와 삼각형 팀파눔을 얹은 그리스 신전의 형식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리스의 신전과 비교해보면 열주는 너무 가늘고 팀파눔은 지나치게 커서 그리스 신전이 지닌 조화로운 비례는 찾아볼 수 없으니 로마인은 미의 요소는 빠뜨린 채 형식만 가져온 셈이다. 그러나 판테온의 전체구조를 보면 로마인은 현관만 그리스 신전 형식으로 장식하였을 뿐 내부는 완전한 구의 단일 공간으로 설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전은 내부를 닫고 외부에서의 시각적 효과를 중요시한 건축인 데 반하여, 로마의 판테온은 내부를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 상과 그리스 조각의 전형으로 본 <창을 들고 가는 사람>을 비교해보면 로마인들이 그리스 미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다. 즉 몸의 포즈와 형태를 그대로 수용한 채 아우구스투스의 갑옷을 입히고, 보편적인 얼굴이었던 그리스 두상 자리에 초상을 넣음으로써 황제의 상을 바꾼 것이다. 

     

     회화의 예도 살펴보자. 앞 장에서 본 바와 같이 그리스의 고전기와 헬레니즘시기에는 벽화 등의 대형회화가 크게 발달하였으나 본토에 있던 원작은 거의 소실되었다. 반면에 이를 받아들인 로마의 회화는 많은 부분이 보존되어 있어서 그리스 회화의 성격을 짐작게 하며 또한 로마인의 다양한 수용형태를 보여준다. 테세우스를 주제로 한 두 그림은 모두 미노스 궁전에 갇혀 있던 아테네인들을 구출한 영웅 테세우스의 모습이다.

     

    어떤 그림이 더 좋은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아테네인을 구하는 테세우스 1> 그림을 선호한다. 당연한 것이 남자의인체를 훨씬 아름답게, 그리스 조각에서 본 모델같이 묘사된 것에 비해 <아테네인을 구하는 테세우스2>의 인체는 어깨가 너무 내려왔고 상체도 너무 길며 허리와 다리를 잇는 고관절의 묘사도 약하다. 실제 인체에 더 유사할지는 모르지만 아름답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각해보자. 왼쪽의 그림은 테세우스라는 한 영웅을 강조할 뿐이지만 오른쪽 그림은 그가 구한 아테네 시민들에게도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서 이야기에 더 충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나 역사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때론 그리스 화가를 데려오기도 하고, 혹은 그리스의 그림을 보고 로마의 화가가 그리기도 하였다. 두 그림은 모두 기원후 1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테네인을 구하는 테세우스1>의 테세우스는 로마의 행정장소였던 에스퀼리노 언덕에서 발견되었고, <아테네인을 구하는 테세우스2>의 테세우스는 폼페이의 개인 집에 그려진 것이다. 전자는 좀 더 공격적인 장소에, 후자는 개인적인 공간에 그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초기 황제 시대엔 공적인 목적에서 그리스 문화를 더 많이 수용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또한 전자는 그리스 화가가 와서 그린 것이라면 후자는 이를 보고 로마 화가가 그린 것일 수도 있다. 

     

     한 두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야채와 닭을 파는 집 간판>의 부조는 오스티아 도시의 가게 간판이었다. 아래쪽엔 토끼가 갇혀 있고, 위엔 닭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닭과 토끼 등을 파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간이 음식점 간판>의 그림은 무슨 가게의 간판일까? 시원한 음료와 과일이 있는 것을 보니 아마 간이 음식점인 듯하다. 작은 테이블은 옆에서 보고 컵은 약간 위에서 보고 그린 것이어서 엉터리같이 느껴지겠지만 이것은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컵을 옆에서 보면 사다리형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빵 제주업자 M. 베르질리우스 에우리사세스의 무덤>의 부조도 로마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부조는 빵 제조업자 M. 베르질리우스 에우리사세스의 무덤 제일 윗부분에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서부터 보면 나귀가 돌리는 방아가 보이고, 그 왼쪽 상 위에서 두 사람이 무언가 만들고 있다. 밀을 가루로 만들어 반죽하고, 그 왼쪽의 오븐에 넣어 빵을 만드는 장면이다. 빵 굽는 이를 미화시키지 않고 직업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로마인의 현실적인 성격도 놀랍지만 이 무덤이 서울로 말하면 4대문 안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도 또한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인들이 죽은 이를 승리한 운동선수나 용감한 기병으로 미화시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로마인은 묘비에 직업을 그대로 '빵 굽는 이'나 '배 만드는 이'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로마인의 이러한 현실적인 사고방식은 미술사에 또 다른 두 가지 업적을 남겼다. 하나는 황제의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이고 다른 하나는 초상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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