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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 서유럽 미술의 형성_2카테고리 없음 2023. 7. 17. 16:09
중세 미술에서는 누드묘사를 거의 금기시하였다. 아담과 이브가 누드의 유일한 예이다. 그것도 이 그림에서처럼 세부의 특징을 거의 묘사하지 않고 있다. 또한 선악과를 따서 아담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 장면에 이브를 두 번 묘사한 것을 보면 이 시대의 삽화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합리성보다는 이야기의 전달이 훨씬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주로 필사본의 회화를 통해 커롤링거 왕저의 미술을 보았지만, 이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품은 단연 금속공예이다. 그림에서 보는 아름다운 금속품은 모두 성경책의 표지이다. 의 표지는 은에 금도금을 하고, 부분적으로는 에나멜로 색을 내고 귀한 돌을 박았다. 책의 네 모서리엔 네 복음사가가 새겨져 있지만 이 표지를 압도하는 것은 연속된 매듭무늬이다. 이러한 문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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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 서유럽 미술의 형성_1카테고리 없음 2023. 7. 17. 15:47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전달하기 어려운 시기가 바로 중세 초기의 유럽 미술이 아닌가 싶다. 내용이 어려워서라기보다 사람들의 눈에 확 띄는 작품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작품들은 대부분 미사도구나 성경책의 삽화들이기 때문에 크기도 매우 작으며, 특정한 문화의 성격이 형성된 시대가 아니어서 독자적인 특성을 부각시키기도 어려운 시대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특성이다. 게르만족이 유럽 전역에 분포되어 정착하면서 국가를 형성하고 라틴족의 발달된 문화와 기독교를 수용하는 시기이니만큼 이 세 가지 문화가 혼재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미술이 어떤 면에선 미흡하지만 만약 이 시기가 없었다면 이후의 서양미술은 현재의 우리가 보는 것과 매우 다른 모슴이었을 것이다. 게르만민족이 유럽 전역으로 이동하면서 그 중 앵글로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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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미술의 특징_3카테고리 없음 2023. 7. 17. 15:01
시대의 아픔을 철학자적인 자세로 감수하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는 달리 그의 계승자 콤모두스 황제(재위 180-192)는 변경의 모든 영토를 포기하고, 원로원이 아닌 경기장에서 세월을 보내어 국가를 더욱 위기에 빠뜨렸다. 그리고 자신을 더욱 강한 황제로 부각시키기 위하여 헤라클레스에 비유하였다. 안팎으로 흔들리던 로마는 더 이상 훌륭한 한 인간인 황제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점차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진 황제를 요구하는 사회심리를 보이게 된다. 이후 150여 년이 지난 4세기 전반, 황제는 초월적인 존재가 된다. 의 초상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재위 305-337)이다. 황제 상은 더이상 특정 인물을 닮은 초상이 아니다. 커다란 두 눈은 먼 곳을 응시하여 초월적인 인상을 준다. 더 놀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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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미술의 특징_2카테고리 없음 2023. 7. 16. 13:25
'로마'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가? 개선문, 콜로세움, 로마 황제...., 그렇다 바로 그런 것이 로마의 유산이다. 로마 황제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영토확장과 그것의 유지였다. 그리고 전쟁에 승리를 하면 개선문과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스인들은 전쟁에 승리한 후 신전을 지어 신에게 감사드렸다면 로마인은 이를 황제의 업적으로 기린 것이다.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엔 그들이 예루살렘 점령 후 전리품을 들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부조를 새기고, 아치 안에는 독수리로 로마 황제를 상징하였다. 로마인에게는 승리와 개선이 최고의 명예였으며 개선문을 세워 이를 기념하였다. 로마인은 또한 기념주를 만들어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과정을 부조로 새겼다. 는 높이가 4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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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미술의 특징_1카테고리 없음 2023. 7. 14. 22:49
기원전 146년 로마가 그리스가의 코린트 지역을 점령한 이후 지중해 지역은 사실상 로마의 영토가 되었다. 로마 시의 티베리나 섬에서 시작한 로마 민족은 이제 제국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원래 호전적이었던 로마 민족은 그리스의 발달된 문화를 적극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변형시켰다. 비너스와 마르스의 상에 얼굴만 바꾸어 부부의 초상을 만들었는가 하면, 그리스 신전 형식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인이 중요시하던 조화로운 비례는 무시하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고대 전공의 초기 미술사학자들은 로마가 그리스 미술을 망쳐놓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화 현상은 한 가지 기준으로 우열을 가리기보다 각 사회의 요구에 의한 생산임을 자각한 이후의 학자들은 로마 미술이 지닌 실용성과 현실성,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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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회화와 헬레니즘 미술카테고리 없음 2023. 7. 14. 22:24
그리스 도자기를 통하여 살펴본 아르카익 시대의 회화는 기원전 5세기의 고전기에 큰 규모의 벽화로 발전하였다. 원근법과 명암법, 다양한 색채가 구사된 사실적인 회화는 실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들은 2500여 년의 흐름과 함께 소멸되었으며 문헌의 기록을 통해서만 그리스 회화가 얼마나 사실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로마의 폴리니우스는 기원전 4세기 초에 활동한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경쟁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하루는 제욱시스가 포도송이를 그리니 새가 진짜인 주 ㄹ알고 그림에 날아 앉았다고 한다. 득의양양한 제욱시스는 파라시우스의 그림을 보자고 하면서 앞에 있는 커튼을 걷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커튼은 바로 피라시우스의 그림이었다. 제욱시스는 자기는 새를 속였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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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회화의 황금기와 벨라스케스, <시녀들>카테고리 없음 2023. 7. 14. 17:20
흔히 17세기를 스페인 회화으 황금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놀라운 회화의 솜씨를 발휘한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있었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를 살펴보기 전에 당시 스페인 화단의 특징을 먼저 보자. 17세기 스페인에서는 종교적 신부주의가 만연해 있었으며, 제수이트 교단을 이끌었던 열정적인 성인 이그나티우스 역시 스페인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 리발타의 은 종교적인 체험을 주로 다루었던 17세기 스페인의 반종교개혁적인 회화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가 하면 후안 산체스 코탄(1561~1627)은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함축적인 정물화를 주로 그렸다. 톨레도 출신으로 야채와 열매들을 인위적으로 배열하여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한 코탄의 정물화는 금욕적이면서도 건축적인 당당함을 지니고 있어 쉽사리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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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의 고전주의와 라파엘로카테고리 없음 2023. 7. 13. 17:49
르네상스 시대의 로마 교황청은 종교만을 주관하는 기관이 아니라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중부와 북동부에 이르는 큰 영토를 지닌 교황청 국가였다. 또한 로마는 가톨릭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고대로마 제국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었으니 가톨릭과 고대문화 가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곳이었다. 야심이 큰 교황들은 언제나 '세계의 머리'로서의 로마를 재건하려 하였고 그때마다 고대의 유산을 바탕으로 한 고전주의 경향의 미술이 적용 또는 이용되었다. 교황 식스투스 4세(재위 1471~1484)는 로마의 도시계획을 정비하고, 옛 문서를 모아 도서관을 설립하였으며, 고대조각들을 모아 박물관을 지었다. 바티칸 도서관의 벽면에 그려졌던 는 도서관과 고대가 교황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말해준다. 교황은 로마의 황제같이..